font-family: 'Nanum Myeongjo', serif; font-family: 'Nanum Myeongjo', serif; 자기연민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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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불안장애

자기연민의 시작

나는 마음이 여리고 불안을 잘 느낀다.

남들이 100 중 10정도의 불안을 느낀다면 나는 7~80은 느끼는 것 같다.

이런 나의 불안을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편이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도 그렇고, 남들에게 피해주기 싫어 "이런 우울한 이야기 듣고 싶지 않을거야" 라는 생각에 잘 얘기하지도 않았다.

얼마 전 엄마는 나에게 왜 티 내지 않았냐고 물었다.

글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티를 내왔고, 진심으로 마음이 힘들다는 고백을 하기 쉽지 않았던 심리적 상황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밝아 보이고 좋은 사람인 척 노력하지 않으면 가치있는(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느끼는 내 마음을 아무도 모르는 건 당연하겠지.  

 

누군가를 탓하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나 힘들게 나를 포장해왔는데. 그게 내 마음의 생김새 때문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혹여 그렇다 해도 더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 고군분투하며 살아왔지만 제자리 걸음인 기분 탓에 도저히 기운이 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을 탓하며 합리화를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그래서 결국 습관처럼 나를 탓하고 나무랐다.

"괜찮은 거라고 몇 번을 얘기해!" "언제까지 니 인생 손 놓고 이렇게만 있을 거야!" "더 잘해봐 넌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이런 생각들은 나를 성장시켜줄 줄 알았다.

냉철하게 단련시켜주어야 강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내가 날 죽이는 독극물을 마시고 있었다.

 

다그치는 건 쉬운데 진심 가득한 자기연민은 아직 어려운 것 같다.

예전에 참 이런 게 궁금했다.

자존감과 자존심의 경계. 자존심을 버리면 자존감도 무너졌고 자존심을 세워 가짜 자존감을 세웠다.

그래서 그 둘의 경계가 참 어려웠다.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되 나를 사랑하라.'

너무 오랜 기간 나의 부족한 부분을 증오했어서.. 그걸 실천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내가 날 무조건 싫어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나의 장점을 좋아하기도 했고 나를 사랑했기에 불안증세를 극복하려 노력했다. 다만 나를 좋아하는 부분이 늘 타인의 기준에 맞춰져 있어서 그렇지..)  

 

난 솔직한 편이지만 '나로써' 솔직해지는 방법을 잘 몰랐다. 왜냐면 나를 몰랐기 때문에.  

자꾸 연습해야 겠다.

남들의 의견, 평가만이 내 모습이 아니라는 것.

세상에 완벽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세상에 완벽해지지 않겠다는 것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지금 내가 불안한 이유는 나에 대한 타인의 부정적 시선을 견디지 못하겠다. 

그럼 내가 정말 부적합한 행동을 하느냐?

실제 결과는 별로일지 몰라도 나의 마음과 행동과정에서는 전혀 아니다.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관점 포인트는 어디를 보고 있을까? 다른 사람이다.

나는 나를 전혀 보고 있지 않다. 늘 오너나 상사의 시선만을 쫒고 있다.

마음가짐이나 행동에서 좋은 결과를 위하는 것은 좋지만, 주체성을 잃고 좋은 결과만을 쫒는 것은 잘 못 됐다.

시점을 나로 옮기는 연습! 필요해. 너의 시점으로만 판단해.

스스로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제일 잘 보여야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니다.

""다. 나에게 보여주자. 내가 우선이다.

 

 

세상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묻지 마라.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그 일을 하라.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살아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하워드 서먼 Howard Thurman-